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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막의 두피는 모발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모발의 성장에 장애가 오고 탈모 현상이 일어난다면 두피는 보호받지 못하고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현상들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우리가 아는 대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탈모 현상이 올 때 관리법은 작게는 두피관리 , 크게는 모발이식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가발이 있습니다. 오늘은 두피의 패션 아이템 가발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합니다. 가발의 이미지는 몇 년 전만 해도 탈모가 많이 진행된 사람만이 착용하는 것으로 인식돼왔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 방송 등을 통해 패션 아이템으로도 충분히 그 활용도를 인정받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기분을 내거나 , 한 번씩 이미지 바꾸고 싶을 때도 사용하는 하나의 액세서리가 되었습니다. 가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당나라와 교역물품으로 사용될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신라뿐 아니라 백제, 고구려 시대에도 가발을 만들어 머리에 둘렀다는 문헌이 기록된 것을 보면 그 역사가 얼마나 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아이들의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에서 모발은 속칭 두발 혈여(피의 여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발자혈지여와 비슷한 개념으로 모발은 인체의 여분의 혈액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부족하면 탈모가 발생하다는 한의학의 견해와 상통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관리도 있지만 내적인 관리도 필요한 것이 두피와 모발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체 문화사 중 한 부분의 내용으로 이용태(1556~1586)의 묘에서 수습된 유물 중 그의 부인이 쓴 고어체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남편에 대한 애절함과 그리움이 있었으며 미투리에는 자신의 모발과 짚으로 짚 신형 신발을 만들어 병환 중인 남편의 쾌유를 빌었지만 결국 신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같이 묻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모발은 남편의 무사안녕을 바라는 주술적인 의미였으며 마음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역사들을 살펴보면 이처럼 모발을 주술적으로 다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에도 17세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발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그랗게 말린 모발이나 땋아 늘어진 머리카락을 선물하기도 했는데 이때는 이것만큼 친밀한 선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 사람들은 모발을 비단 종이에 싸서 동그랗게 말아 목걸이, 반지 등에 넣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여성들 (처녀)은 자신의 모발을 땋아 꽃, 소용돌이 장식 또는 숫자를 모티브로 하여 지급이나 리본에 수놓는 방법을 배웠고 이런 이를 직접 하는 장인들도 있었다 합니다


지금은 선물을 저렇게 주면 무서워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였을 텐데 저 시기에는 모발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이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패션의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가발 또한 서서히 인식이 바뀌고 모발을 선물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고 순간 생각해보았습니다. 가발의 역사에 대한 포스팅은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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